| 제목 | 제35회 한터 백일장 작문 심사평 & 수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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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센터지기 |
| 작성일 | 2025.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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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한터 백일장 작문 심사평 & 수상작 ■ 제시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의성어 또는 의태어를 제시어로 하는 작문을 작성하시오. ■ 심사평 이번 백일장 작문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의성어 또는 의태어를 제시어로 선택해서 쓰는 방식입니다. 쓰는 사람이 어떤 단어나 숫자나 문장을 고르고 그것을 제시어 또는 제시문으로 쓰게 하는 유형의 작문을 쓸 때는 쓰려고 하는 내용을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단어나 숫자, 문장을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이 이미 작성해본 작문 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글의 내용을 활용할 여지도 많습니다. 의성어나 의태어는 보통 작문 제시어로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백일장 제시어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형용사나 부사, 동사가 제시어로 등장하는 작문은 드물게 볼 수 있는데, 의성어나 의태어로 쓰라는 기출문제는 별로 없어서 실험적으로 출제해봤습니다. 언론인은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표준적으로, 세련되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익히려면 국어사전을 사랑해야 합니다. 최우수작은 ’우물쭈물‘이라는 의태어를 골랐습니다. 보통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지만, 중간이 없고 극단적 주장과 조급한 정답만을 요구하는 세상에서는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확신이 만드는 단단한 벽 사이로, 머뭇거림의 틈새에서 바람이 스밀 때 세상은 비로서 숨을 쉰다.”는 마지막 문장은 한국 사회의 현실에 절실히 필요한 경구로 읽힙니다. 우수작 1은 밀가루, 약, 담요를 싣고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는 배에 탄 1인칭 화자의 스토리입니다. 실제 있었던 일과 상상을 더해서 쓰는 ’팩션‘(faction, 팩트+픽션) 형식으로 썼는데 완성도가 높습니다. 팩션 형식으로 쓸 때 유의할 점은 실제 있었던 일에서 빠져 있는 부분을 개연성 높게 그려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은 글이 됩니다. 우수작 2는 콜센터 직원들이 근무 중에 복식호흡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휴‘하고 내뿜는 냄세에 관한 글인데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좋습니다. 우수작 3은 의태어 ’넘실넘실‘의 의미를 개성적으로 풀어낸 글입니다. 작문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최우수작 (김미경) ‘우물쭈물’. 한번 소리 내 읽어보자. 입 안에서 둥글게 굴러 나와 혀끝에 묘한 리듬으로 머문다. ‘우’에서 숨을 고르고, ‘물’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쭈물’하며 굴러나오는 음절의 완곡함.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생각의 여백을 만드는 소리. 어딘가 허술하고 느릿한 이 단어는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사랑스럽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라고 정의한다. 요즘 우리는 우물쭈물할 틈이 없다. 머뭇거림이 죄가 된 세상에서 우물쭈물은 멸종위기다. 빠르고 단호한 결정은 ‘사이다’라며 추켜세워지고, 빠른 정답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뉴스 댓글창과 SNS에서는 매일 ‘정답 배틀’이 열린다. “확실히 해라” “찬성이냐 반대냐” “얼른 결정해라” 우리는 늘 그런 주문을 듣는다. 확신이 빠를수록 현명한 사람이 되고, ‘생각이 많다’는 칭찬이 아니라 경고가 돼버렸다. 망설이는 사람은 우유부단하다고, 신중한 사람은 답답하다고 한다. 우물쭈물이 사라진 세상에서 ‘중간’은 없다. 누군가의 말을 듣자마자 ‘맞다’ 혹은 ‘틀리다’로 분류해야 하고, 의견을 내면 즉시 어느 편인지 검열당한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질문은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속도가 곧 도덕이 되고 빠른 결정이 미덕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더 빨리 판단하고 더 쉽게 단정 짓는다. SNS는 순식간에 재판장이 되고 타인의 실수는 캡처되어 영구보존된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바로 뒤처질까봐, 자신의 생각이 완성되기도 전에 ‘정답’을 내놓으려 조급해진다. 그렇게 우물쭈물은 점점 삭제된다. 하지만 나는 그 ‘중간’의 순간, 짧은 머뭇거림을 좋아한다. 말이 머뭇거리고 생각이 맴돌 때, 그 틈에서 진짜 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물쭈물은 게으름이 아니라 사유의 리듬이다. 인간은 원래 단정적이지 않다.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흔들리고, 말이 꼬인다. 입력하자마자 답을 출력하는 것은 기계나 AI에게 요구할 법한 일이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리듬인데, 우리는 어쩌다 그 리듬을 스스로 금지하며 살게 된 걸까. 마음속에서 문장이 여러 번 부딪히고, 단어가 삐걱거리며 자리를 찾는 그 과정이 바로 인간다움 아닐까. 나는 우물쭈물의 순간들 속에서 더 많은 진심을 봤다. 빠릿빠릿한 단호함으로 수개월짜리 짧은 연애만 반복하던 내가, 유일하게 3년간 사귀고 있는 지금 남자친구에게 푹 빠진 건 망설이고 생각을 거듭하며 우물쭈물 마음을 전하던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말을 잇지 못해 눈을 피할 때, 그 머뭇거림엔 계산보다 솔직함이 깃든다. “글쎄요…” 하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을 단정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확신이 날카로울수록, 우물쭈물은 부드럽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늘 그렇게 흘러왔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단번에 내리지 못했다. 학교를 정할 때, 진로를 고를 때, 글을 쓸 때조차 수없이 망설였다. 서툴고 느렸지만, 그 모든 망설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우물쭈물하며 산다. 우물쭈물은 누가 옳고 그른지 단정짓지 못하고 내 판단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초정밀한 사회에서 길을 잃기 전에, 조금쯤 우물쭈물해도 좋지 않을까. 확신이 만드는 단단한 벽 사이로, 머뭇거림의 틈새에서 바람이 스밀 때 세상은 비로소 숨을 쉰다. ■ 우수작1 (차원) 처......... ㄹ썩, 처........ ㄹ썩, 척, 쏴........... 아. 배가 흔들린다. 돛대가 비틀리고, 철창 같은 파도가 배의 옆구리를 찌른다. 바다는 나를 삼킬 듯 일렁이지만, 또 그만큼 나를 태우고 간다. 나는 철제 상자에 구호품을 실었다. 밀가루, 약, 담요,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하늘은 낮게 깔려 있다. 구름 사이로 흙빛 햇살이 새어나와 바다를 비춘다. 그 빛은 목욕탕의 형광등처럼 차갑고, 파도 위의 소금기와 섞여 희미하게 번진다. 나는 손끝으로 갑판의 소금을 문질렀다. 염기가 손바닥에 남았다. 아마 그건 바다의 눈물일 것이다. 어제 뉴스에서는 또 이스라엘이 폭격을 퍼부었다고 했다. 병원이 무너졌고, 사람들은 벽 밑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이내 침묵했다고 한다. 음식이 없어 굶어 죽고, 음식을 구하러 가다 죽었다고 한다. 절규는 아무것도 바꿔내지 못했다. 나는 그곳을 직접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사진 속 아이의 눈동자, 검은 먼지 뒤로 드러난 작은 손, 죽음을 품은 표정. 그것들은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스무 살 봄, 진도 앞바다에서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던 날들이 있었다. 물 위에 떠 있던 꽃과 종이배, 방파제의 울음,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 그때부터 바다의 냄새를 맡으면 가슴이 서늘해졌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배가 또 한번 무겁게 몸을 틀었다. 선장은 말이 없다. 침묵은 바다 위에서 하나의 질서다. 말 대신 몸이 기억하는 일만 남는다. 나는 바다를 본다. 거기에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있다 여긴다. 파도 하나하나가 죽은 사람들의 호흡 같다. 이 항로는 그들의 무덤 위를 지난다. 나는 왜 가는가. 누가 나에게 가라고 했던가. 누군가의 동정이 아니라, 도망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뉴스 안에서만 슬픔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이 배를 탔다. 슬픔을 가까이 두면 사람이 말라간다. 그렇지만 멀리 두면 썩는다. 그 중간쯤에서 나는 버틴다. 돛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앉는다. 목을 틀며 내 쪽을 본다. 그 눈빛이 사람의 눈처럼 젖어 있다. 나는 그것이 하늘의 전령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살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떠나간다. 삶은 언제나 파도의 잔물결 속에서 다시 꺼내진다. 그러나 그 물결이 남긴 염분은 쉽게 닦이지 않는다. 저 멀리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눈앞의 색깔은 하나의 회색으로 번지고, 그 속에 소리가 묻힌다. 세상은 여전히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 처럿, 쏴아. 생과 사, 출항과 도착의 거리에서 같은 소리를 낸다. 나는 상자 하나를 열어 본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밀가루 포대와 푸른 글씨가 적힌 편지다. 어린아이가 그린 태양의 그림과 함께 적혀 있다. "희망." 누군가의 손끝이 세상을 붙잡으려 한 흔적이다. 그 작은 글자 하나가 이 파도보다 더 무겁다. 밤이 오고, 지중해의 별빛이 돛대 위로 흘러내린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때, 바다 저편에서 아주 오래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 우수작2 (이수빈) 제목: 휴(休) “코로 4초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7초 동안 숨을 참은 후, 입으로 8초 동안 천천히 내쉽니다." 먼지 쌓인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50명의 직원이 동시에 배를 부풀렸다. 일제히 내려오는 사람들의 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참았다. 어플 이용자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자랑스러운 콜센터 직원들의 쉼을 응원한다는 의미의 교육이란다. 나도 따라 숨을 들이쉬었다. 휴우우 소리와 함께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다시 숨을 쉬려던 찰나, 불청객이 코를 노크한다. 마늘과 담배, 커피, 김치, 구강청결제가 오묘하게 섞인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다시, 휴. 4-7-8 호흡법이 점령한 사무실의 변화는 크고 불쾌했다. 4초라는 시간은 누군가의 속사정을 알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상담사들의 목소리와 PC, 벽면에 위태롭게 달린 텔레비전이 뿜어내는 열기와 뒤섞인 8초의 숨들은 각자의 비강에 무겁게 달라붙었다. 좌석마다 칸막이가 설치돼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숨조차 섞기 싫다는 가요 가사가 이해가 갈 정도로 오묘한 냄새들의 결합은 나의 편두통 주기를 짧게 하기 충분했다. 퇴근 후에도 냄새는 따라왔다. 꽤나 긴 샤워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폐 속까지 자리 잡은 냄새는 내 숨에도 섞여 나오는 듯했다. 어느 날은 피지도 않는 에쎄 향이, 어느 날은 옆자리 직원이 먹은 돼지국밥 냄새가 속에서 올라왔다. 남의 냄새가 내 냄새가 된 셈이었다. 나는 점점 숨을 얕게 쉴 수밖에 없었다. 숨이 짧아지니 자연스레 '휴'소리는 사라졌다. 그러나 숨을 참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민원들에 시달리는 직원들의 한숨은 계속됐고, 팀장은 호흡법을 멘탈 관리라 부르며 더 깊게 쉬라고 했다. 사람들은 순순히 배를 부풀렸다. 그 사이, 마음의 소리함에는 환기가 필요하다는 쪽지만 쌓여갔다. 그즈음이었다. 내가 이달의 우수 사원으로 뽑혀 팀장의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도. 정확히는 마음의 소리함이 꽉 차서 쪽지를 뱉을 지경에 처했을 그때였다. 팀장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복식 호흡법이 회사를 망치고 있습니다. 마음의 소리함을 보면 아시겠지만….” “아, 그 부분은 제가 준비한 게 있어요. 다음 주에 출근하면 볼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팀장은 자신만만하게 다음 주를 기대하라며 나를 차가운 닭장으로 돌려보냈다. 사무실 공기와 다르게 향긋하면서 촉촉한 이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무의식 속에서도 나는 팀장의 방에 있는 공기청정기와 창문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며칠 뒤, 스피커에서 새로운 음성이 흘렀다. “오늘은 명상입니다.” 휴. 호흡은 쉼이 아니라, 이 순간 나를 돌아보라는 스피커의 소리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익숙한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커피, 김치, 그리고 조금의 먼지. 눈을 살짝 떠보니 명상을 하는 직원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오며 자신의 방에 쏙 들어가 버리는 팀장이 보인다. 채 닫히지 못한 문틈 사이로 팀장의 방에 새롭게 둥지를 튼 거대한 화분이 보인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닫혀가는 팀장의 방을 노려보며 나는 다시 숨을 내뱉는다. 휴. ■ 우수작3 (허서윤) 표면장력 게임을 해 본 적 있는가. 소주잔에 술을 가득 따른 후 소주를 한 방울, 두 방울... 소주는 흘러넘칠 듯 말듯 아슬함을 보여준다. 넘실거리는 소주의 표면에 집중하며 게임을 지속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소주잔의 높이를 넘어서 술이 따라져 있다. 하지만 소주는 흘러넘치지 않는다. 표면장력 때문에. 넘실거리기만 할 뿐이다. 사람들은 이 넘실거림에 환호한다. 넘실거림에도 흘러넘치지 않기에, 넘칠 듯 말듯 아슬하기에 재밌어한다. 웃기는 것은 과연 언제 흘러넘칠지 마음 졸여 놓고선 흘러넘치고 난 후에는 흥미를 뚝 잃는다는 것이다. 한 방울의 신중과 또 한 방울의 집중. 나는 이 표면장력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 운과 신중이 만드는 일종의 도박 같아서 말이다. 도파민이 쾌락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아니라 놀람과 실망을 반영하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 쯤에서 술이 넘치겠지’ 예상했는데 넘치지 않으면 놀람. 도파민이 분출된다. ‘한 번 더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술이 넘친다면, 도파민은 마이너스가 된다. 실망의 감정이다. 소주 표면장력의 넘실거림은 기대와 놀람, 실망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는 기대, 놀람, 실망을 느낄 때 내 마음이 넘실거린다고 느낀다. 가령, 친구의 연애 상담을 해 줄 때 말이다. 친구로부터 전해 듣는 상대의 행동, 주고받은 대화, 문자 메시지 등 한 방울, 한 방울. 나는 이 둘이 연인 관계로 발전할 것인가 아닌가 마음 졸이며 기대한다. 둘의 관계가 넘실거리는 것이고, 넘실거리는 둘을 보며 난 마음이 넘실거림을 느낀다. 웃긴 것은 결말 또한 표면장력 게임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둘의 관계가 언제 흘러넘칠지 기다려 왔으면서, 막상 연인으로 발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흥미가 팍 식는다. 결과가 나온 후에는 기대도, 놀람도, 실망도. 넘실거림이 없다. 나는 오늘 삶 또한 넘실거리기에 흥미로운 것이라며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기로 했다. 합·불 결과에 기대하고, 놀라고, 또 실망하고. 그것은 넘실거림인 것이다. 흘러넘친 후에는 흥미가 식을, 그러나 지금은 넘실거리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삶을 원하지만, 사실 가장 열광하는 것은 불안정의 넘실거림이지 않는가. 내가 떨어뜨리는 한 방울, 한 방울은 표면장력을 이루고 있는 것뿐이다. 언젠가 흘러넘치는 날이 오면 재미가 없어질테니 나는 이 넘실거림을 흥미로운 것이라 가스라이팅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로 ‘넘실넘실’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의태어로 삼기로 결정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