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35회 한터 백일장 논술 심사평 & 수상작
작성자 센터지기
작성일 2025.10.28
제35회 한터 백일장 논술 심사평 & 수상작


■ 논제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바람직한 교육개혁의 방향인지 3개의 키워드로 논하라.


■ 심사평

한국의 교육 문제는 흔히 ‘고질병’으로 불립니다. 진보정보, 보수정부 모두 해결해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학벌이 너무 큰 사회적 자본으로 인정받아 소득 격차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 서울일극주의와 연결된다는 점,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한 투기적 가수요가 핵심인 부동산 투기의 원인이라는 점 등이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입니다. 대학 입시 방법의 변화 같은 ‘언 발에 오줌 누기’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입니다.

이번 백일장 논제는 이재명 정부의 대표 교육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바람직한 교육개혁의 방향인지를 물었습니다. 3개의 키워드로 논하라는 조건도 달았습니다.

응모한 대부분의 글이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논술이 갖춰야 할 조건들, 즉 논지의 일관성과 명확성, 구조의 완성도, 논증의 설득력 등을 두루 갖췄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언론들이 이 주제를 상세히 다뤄서인지 대부분 글에서 비슷한 논지와 논거가 발견됐습니다. 서울대 하나를 중심으로 한 대학서열화를 누그러뜨린다는 점, 해당 대학들에 교육 예산을 실제 투여하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라는 점,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한다는 점 등을 긍정적 요소로 꼽았습니다. 부정적 요소로는 세분화하고 정교한 또다른 대학서열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 국립대 이외의 지방 사립대와 전문대의 소멸이 빨라진다는 점, 지역균형발전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았습니다. 대학 평준화와 등록금 무상화와 같이 근본적 개혁을 촉구하는 글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3가지 키워드를 요구하는 글을 쓸 때는 키워드 자체에 신선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너무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키워드로 쓰면 평범한 글이라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잘 고른 키워드가 내용을 돋보이게 하기도 합니다.

최우수작은 중력, 초신성, 별자리라는 키워드를 써서 읽는 이의 눈길을 끕니다. 내용도 치밀하고 현실적이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긍정적 효과와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교육의 본질은 서열이 아니라 생태”라는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수작 3편도 모두 뛰어난 글들입니다. 교육개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보다 근본적인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논술 백일장에 응모해준 모든 준비생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최우수작 (김미경)

교육은 우주와 닮았다. 질량이 모이면 중력이 생기고, 그 중력이 커질수록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 지금 한국의 교육 체계는 거대한 블랙홀 하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름하여 ‘서울’. 인재와 예산, 연구시설과 산업의 중심이 모두 서울에 몰리며, 지방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그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중력의 분산이 아니라 또 다른 블랙홀의 복제로 끝날 수 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중력이다. 수도권은 이미 지식의 블랙홀이다. 전국 50대 대학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정부 연구비의 70%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집중돼 있다.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은 인재와 연구비를 동시에 흡수하며 지방의 지식 기반을 약화시킨다. 지방 우수 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로 이동하고, 졸업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 중력을 분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서울대의 모양을 복제한다고 해서, 그 힘이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력은 수의 문제가 아니라 질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초신성이다. 초신성은 별이 한계에 이르러 폭발할 때 나타나는 찰나의 빛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역시 폭발적 에너지를 가진 정책이다. 단기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급’으로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화려하지만 위험하다. 초신성은 자신의 중심을 태워버린 뒤 껍질만 남긴다. 그처럼 성과지표 중심의 속도전식 개혁은 지역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태워버릴 수 있다. 실제로 대덕연구단지처럼 오랜 기간 정부와 연구소, 대학, 기업이 맞물려 형성된 성공 사례는 빠른 폭발이 아니라 수십 년의 누적과 협력에서 탄생했다. 교육개혁이 초신성의 불꽃처럼 타오르기만 하고 남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개혁이라 할 수 없다.

세 번째 키워드는 별자리다. 진정한 개혁은 새로운 블랙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대학들이 서로 연결된 별자리를 세우는 일이다. 부산의 해양대학과 조선기술연구원, 울산의 UNIST와 자동차·배터리 산업단지, 전북의 전주 탄소산업단지와 전북대, 경북의 포항공대와 신소재 클러스터가 서로 협력한다면, 각각의 지역이 고유한 중력을 지닐 수 있다. 이런 연결망이 곧 한국 교육의 은하계를 이루는 별자리다. 대학이 산업·연구·지자체와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지역은 단순한 분교가 아닌 독립된 중심이 된다. 이는 단순히 ‘서울대의 아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이 자신만의 궤도를 가진 다중 중심적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길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중력을 분산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방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서울대급 대학’이라는 기준을 단일 모델로 삼는다면, 교육의 다양성과 지역의 정체성은 사라진다. 바람직한 교육개혁은 서울대의 복제가 아니라, 별자리형 네트워크 구축이다. 각 지역의 대학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빛나며, 연결될 때 전체의 밝기는 더 커진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교육개혁의 한 모델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본질은 서열이 아니라 생태다. 수도권의 중력에서 벗어나, 초신성의 폭발을 넘어, 별자리처럼 연결된 지식의 은하를 만드는 것. 그 길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울대 10개’보다 더 크고 지속적인 교육개혁의 우주를 열 수 있을 것이다.


■ 우수작1 (박주연)

‘10’. 온건한 숫자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개혁이지, 혁명이 아니다. 서울대를 더 만들어 권력을 분산하자고 할지언정, 학벌주의 자체는 계승하기 때문이다. 혁명이 기존의 구조 자체를 전복하는 급진적인 움직임인 반면, 개혁은 구조 안에서의 변화를 꾀한다. 이재명 정부는 기존 시스템을 뒤엎을 생각이 없다. 서울대는 학벌주의, 엘리트주의, 서울중심주의의 상징이자 권력의 중심이다. 그런 서울대를 10개나 만들겠다는 것은 정부가 서울대를 ‘본받아야 할’ 것, ‘지방으로 이식해야 할 선진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정부는 권력 구조를 긍정한다.

‘13’. 한 개의 대학이 13개로 해체됐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개혁과 달리 혁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통념과 달리, 교육 혁명은 이미 일어난 적이 있다. 1968년, 기성세대와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저항하며 프랑스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과 미국, 일본까지 뒤흔든 68혁명이다. 권위주의적인 학문 체계가 혁명을 촉발한 직접적 요인 중 하나였던 만큼, 불길은 프랑스 대학 체제의 전면적 개편으로 이어졌다. 대학은 평준화됐고, 기존의 단일 파리 대학이 해체돼 13개로 나뉘었으며, 일반 대중에게도 입학의 기회가 확대됐다. ‘파리 1대학’, ‘파리 13대학’과 같이 대학 앞에 붙은 숫자는 혁명이 남긴 평등주의의 유산이다.

얼핏 보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파리 13’의 길을 따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은 각각 개혁과 혁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기존 시스템,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군림하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것들과 충돌한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거점국립대를 서울대만큼 키워 극한 입시 경쟁을 해소하고, 지방균형발전을 도모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기존의 권력 구조를 긍정하는 한, 목표는 이뤄지지 못한다. 서울대를 10개 만든다고 해도 그 사이에 다시 서열이 생길 것이며, 지역 사이의 서열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0’. 서울대를 10개 만들 게 아니다. 서울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지방 소멸, 엘리트주의, 극도의 경쟁, 권위주의, 양극화와 같은 문제들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비민주성을 보여준다. 서울대는 이 문제들과 촘촘히 연결된 뇌관이다. 문화적 비민주성은 우리 사회가 해방 이후 독재와 싸워 정치 혁명을 이뤄냈지만 문화 혁명은 경험한 적이 없다는 데서 온다. 이젠 문화를 민주화할 때다. 누군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탈락할 수밖에 없는 경쟁적 입시를 철폐해, 원하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열린 대학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의대와 같은 특수한 학과를 제외하고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Abitur’에 합격하기만 하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 모두가 서울대를 선망하는 이유는 서울대 졸업장이 가져다주는 문화적 권력, 현실 권력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은 소수만이 독점할 때 권력이다. 일부에게 독점되지 못한다면, 서울대는 더는 권력이 아니게 된다. 누군가는 너무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비민주적 교육 체계가 낳는 한국 사회의 문제 상황들이 훨씬 더 급진적이다.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쳤던 68혁명의 정신으로, 서울대를 향한 집착과 헤어질 결심을 할 때다.


■ 우수작2 (성영빈)

독일은 입시 경쟁이 없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이비리그를 두고 경쟁하긴 하지만 각 주마다 그에 버금가는 대학이 있어 경쟁이 심하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는 ‘입시 지옥’이다. 대한민국 수험생의 대다수가 ‘SKY’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입시 과열은 모두가 SKY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몰리는 ‘병목 현상’ 때문에 발생한다. 병목을 해결하려면 고속도로의 선두를 달릴 ‘기회’를 균등하게 줄 게 아니라, 고속도로를 여러 개 뚫어 ‘기회구조’를 균등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기회구조의 균등과 다원화가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SKY 독점체제를 해소하여 기회구조 다원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타당한 개혁 목표다.

개혁의 주요 내용은 목표와 부합한다. 첫째,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기회구조의 다원화가 실현되려면, 지방의 9개 대학이 SKY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정책이 시행돼도 기존 명문대의 학벌, 인맥, 정통성 등의 강력한 문화자본으로 인해 독점이 여전할 거란 우려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이 ‘지위권력’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학 권력은 학벌과 서열의식을 부여하는 ‘지위권력’과 새로운 지식과 산업을 창출하는 ‘창조권력’으로 나뉘는데, 한국 대학은 지위권력이 압도적이다. 대학의 연구 성과보다 대학의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연구중점대학’을 육성함으로써 대학의 창조권력을 확대하고 지위권력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연구 인센티브 지급과 첨단 실험 기자재 확충 방안은 대학이 연구 성과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다. 대학을 ‘단순히 졸업장 따는 기관’에서 ‘산업과 경제를 이끄는 기관’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우수한 대학의 기준을 ‘입학 후 연구 성과’로 바꿈으로써, 학벌이 쌓아온 공고한 대학독점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

둘째, ‘예산의 힘‘이다. 지방대에 대한 국가의 예산 투입은 그 자체로 영향력이 크다. 대학은 예산 투입에 따라 교육의 질, 연구진, 연구 네트워크에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설립된 카이스트와 포스텍은 출발이 늦었지만, 정부의 집중적 예산 투입으로 국내 최고 이공계 대학이 되었다. 2021년 카이스트의 1인당 교육비는 약 8천만원, 포스텍은 약 1억 원으로 최고 수준이었는데, 이는 지방 거점 국립대 중 1인당 교육비가 가장 높은 부산대의 4~5배에 달한다. 국가의 예산 투입이 지방대의 성장에 막대한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학의 특정 학과를 집중 육성하여 예산 투입의 현실성과 예산 투입의 효과를 더욱 높인다.

마지막으로, 개혁이 성공하려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감하고 유례 없는 정책인 만큼 난항이 예상된다. 게다가 대학의 성장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인내가 필요하다. 교육 문제 해결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여 정책을 힘있게 관철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역 격차 문제를 교육 정책으로 한번에 해결하려고 해선 안된다.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까지 좌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들을 교육 정책 하나만으로 해결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아닌 타 부처의 연관 정책으로 해결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개혁이 아니라, 가장 심각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예리한 개혁이다.


■ 우수작3 (최예진)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간판만 늘리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다. 진짜 교육혁신은 대학의 이름이 아니라 분권, 연계, 이동성에 달려 있다. 따라서 수도권 중심의 고등교육 체계를 지역으로 확산하고, 대학 간 협력을 제도화하며 학생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개혁의 출발점이다.

먼저 분권(分權)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 경쟁은 서울이라는 주소에 갇혀 있다. 서울대와 몇몇 상위권 대학이 모든 자원과 인재를 빨아들이는 구조에서 서울대 10개는 서열을 복제하는 일에 가깝다. 반면 독일은 2006년부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함께 추진하는 Exzellenzstrategie(우수성 전략)을 통해 연구·교육 역량을 전국적으로 분산했다. 베를린, 뮌헨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드레스덴공대, 프라이부르크대, 튀빙겐대처럼 중소도시 대학에도 연구 거점을 배치했다. 그 결과, 지역산업과 대학이 긴밀히 연결되고 인재가 수도권에 몰리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분권은 대학 서열화보다 더 깊은 개혁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연계(連繫)다. 독일의 대학들은 대학 간 협업을 제도화했다. 실제로 뮌헨의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와 뮌헨공대는 Munich Cluster for Systems Neurology를 공동 운영하며 인문·공학·의학의 경계를 허문다. 또 독일의 응용과학대학들은 지역 산업체와 긴밀히 협력해 공동 프로젝트·현장실습·산학과제를 수행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대학 간 연계보다 개별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협력을 키우기보다는 경쟁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연계 없는 확장은 또 다른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
셋째는 이동성(移動性)이다. 독일 학생들은 ECTS(유럽학점이수제)를 통해 대학 간 학점 이동이 자유롭고, Erasmus+ 같은 교환 프로그램으로 국경을 넘어 학업을 이어간다. 학비 부담이 낮고, 생활 지원이 촘촘해 이동하는 학습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교환학점 인정이 까다롭고, 단과대·전공별로 기회와 참여의 폭이 제한돼 있다. 이런 제도적 경직성 속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학생의 선택지를 넓히기보다 수도권 집중을 심화할 위험이 있다.

물론 서울대 자체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최근 서울대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하고, 일반고 학생의 지역균형전형 비중을 확대해 특목고·자사고 출신의 지원을 제한하기로 했다. 또한 정시에서 수능 등급과 백분위를 병행해 공정성과 다양성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식 외형적 확장이 아니라, 한 대학이 스스로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확장하려는 내적 개혁의 방향으로 읽힌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의 변화를 전국 대학이 참고할 필요는 있다. 서울대의 이름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가 보여준 기회균등의 철학을 전국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교육정책의 핵심은 간판이 아니라 구조다. 지역 간 분권, 대학 간 연계, 학생의 이동성을 높이는 정책이야말로 진짜 개혁이다. 서울대가 던진 문제의식을 전국이 공유할 때, 비로소 서울대 10개가 아닌 ‘사다리 10개’가 세워질 것이다. 그 사다리를 통해 교육이 다시 사회의 이동통로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개혁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