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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우수작3_김남현
작성자 센터지기
작성일 2020.02.06
제1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 부문 우수작3_김남현

인간은 상상을 한다. 국가, 관습, 문화 등 인류의 관념적 요소들은 거의 대부분 인간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개념을 상상하여 그에 대한 합의를 이루면, 그것은 상징이 된다. 유발 하라리 역시 관념의 상상, 그 상상된 관념에 대한 합의가 인간의 특성이라고 말한바 있다. ‘민족’ 개념이 그 구체적 예다. 과학적으로 민족 개념은 그 실체가 없으나 문명사회라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을 특정 민족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이는 과학적 근거와 큰 관련이 없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에 대한 합의를 이뤘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상상과 합의는 과학적 근거마저 뛰어넘는다.

 펭수도 그렇다. 누가 봐도 펭수는 인간이다. 실존하는 인간이 인형 탈을 뒤집어썼을 뿐이다. 다른 동물에겐 없는 인간만의 상상력을 통해 ‘인간 같은 펭귄’ 개념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저 펭귄을 해부해봅시다!’ 따위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합의 때문이다. 펭수의 본질은 당연히 인간이지만, 동심과 재미를 위해 그런 눈치 없는 소리는 하지 말자는 무언의 합의가 그것이다. 이 합의는 ‘펭수는 펭수다’라는 말로 이어진다. 인류가 사회계약설에 따라 국가라는 현실적·초거대 설정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펭수 역시 결국 상상과 합의에 의한 설정놀음이기에, 팬들과 펭수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 합의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펭수는 묵시적 약속에 따라 ‘진짜 펭귄’처럼 여겨지고 있다. 상상과 합의의 긍정적 사례다.

 문제는 인간의 상상과 합의가 혐오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과학적 근거, 팩트와 무관하게 상상, 합의 그리고 재생산까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 예멘 난민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부터 최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들에 대한 인식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예멘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난민들은 헤즈볼라, 다에시 같은 원리주의적 테러단체와 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폭압적 정권에 대항하다 넘어온 저널리스트, 버티다 못해 조국을 등진 풀뿌리 민중들이 대부분이었다. 믿는 종교를 제외하면 오히려 우리의 민주화 유공자들과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만연했다.  언론에서 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면 ‘역시 기레기’라는 반응이 절대 다수였다. 난민과 상관이 없었던 제주도의 실종사건 마저 그들의 범죄처럼 여겨졌다. ‘무슬림 = 테러리스트’ 라는 혐오의 합의는 이런 식으로 재생산됐다.

 상상과 합의는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인간의 종(種)적 특질은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다. 합의의 결과가 우리 스스로를 겨눌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처음에 중국인만을 비판하던 여론이 몇몇 국내 환자에게로 옮겨간 것과 같다. 반면 희망도 있다. 펭수는 IMF 이후 최악의 경제상황 속에 탄생했다. 청년실업 100만, 저출산·고령화 등의 만성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펭수는 그 존재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냈다. 그 결과 펭수는 대중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다. 펭수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인간이 긍정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상징이다. 펭수의 성공에서 인간의 희망을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