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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 부문 우수작2_ 박혜원
작성자 센터지기
작성일 2020.02.06
제1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 부문 우수작2_ 박혜원

카카오톡 문자를 통한 고백은 금기시되지 않는다. 유독 이별할 때만 금기시된다. 일방적이고 갑작스럽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카카오톡 문자로 이뤄지건 대면해서 이뤄지건 이별 통보는 어차피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일이다. 고백은 상대방에게 승낙하거나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이별은 그렇지 않다. 통보하는 주체에 의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통보 방식은 부차적인 문제다. 연애의 핵심요소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연애는 상호 간의 ‘합의’가 있어야만 성립되며 각종 ‘불문율’로 유지되는 약속이다. 어느 한쪽이 당초의 합의를 파기하고 싶어질 때, 평생 함께 한다거나 당신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따르고 싶지 않아질 때 이미 연인관계는 끝난 것이다. 연애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 우리사회의 다른 약속들도 마찬가지다.

연애는 국가연합과 닮았다. 국가연합은 서로 다른 국가들이 공동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호합의 조약이다. 연애 역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공동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호합의 관계다. 유럽연합의 공고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체결할 당시엔 각국 정상들이 직접 만나 서명을 했다. 탈퇴 통보는 서한으로 충분했다. 카카오톡 문자 이별 통보와 다를 바 없는 행위였다. 당연히 유럽연합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통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순 없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본질이 중요했다. 이별도 그렇다. 상대방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게 본질이다.
 
연애는 스포츠와 닮았다. 스포츠의 묘미는 불문율에 있다. 누구도 강요하진 않지만 선수와 관중의 암묵적 합의로 지켜진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어떻게 연애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인들은 과거의 무수한 연인들이 쌓아온 불문율을 따른다. 하지만 불문율은 시대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가급적 야구 선수들의 트레이드 소식을 미리 보도하지 않았다. 트레이드되는 선수는 팀에서 버려진다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은 선수가 원한다면 먼저 구단에 트레이드 요구까지 하는 시대다. 트레이드 소식도 활발하게 보도된다. 과거에는 카카오톡 문자 이별 통보가 무례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SNS 소통이 활발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연인들은 결혼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언택트와 비혼이 대세다. 연애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과거와는 다르다. 간단하고 빠른 이별 통보는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이다.

연애는 ‘무조건’을 조건으로 하는 약속이다. 국가연합처럼 실질적인 이익이 보장되지도, 스포츠처럼 실력에 따라 명예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연애는 다른 어떤 약속들보다 더욱 자발성이 중요하다. 무엇을 위해 합의하고 규칙을 따르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연애는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이미 목적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물음이 연애에서 무의미한 이유다. 대답은 간단하다. “그러고 싶어서”다. 연애는 그러고 싶어서 시작되며 그러고 싶어서 끝난다. 이별 통보 방식도 자유다. 이별 통보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건은 없다. 조건 없이 시작했기에 조건 없이 끝나는 게 연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