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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 부문 우수작3_ 박동주
작성자 센터지기
작성일 2020.02.06
제15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 부문 우수작3_ 박동주

형식은 내용을 지배하지 않는다. 다나카 마키코는 친미 성향이 강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외상, 즉 장관이었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이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을 일본에 특사로 보냈다. 아미티지는 21세기 미일 관계는 20세기 미영 관계보다 중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나카 마키코는 아미티지의 면담 요구를 ‘격이 맞지 않다’며 거절했다. 그가 부장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외무성은 발칵 뒤집혔다. 형식적 의전을 내세우다가 일본 외교의 기둥인 미일 관계를 망쳤다고 개탄했다. 형식으로 내용까지 판단한 결과다.

연인과의 관계는 카카오톡이라는 형식을 통해 정리해도 된다. 카카오톡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전하는 이별을 왜 고했는지에 관한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카카오톡으로 하는 건 예의없다”라고 하는 사회분위기가 대세가 된 이유는 보통 카카오톡으로 이별을 말할 때,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는 내용으로 이별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리노이 주립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악의 이별 방식은 메시지 몇 줄로 ‘통보’하는 경우였다. 헤어지자는 텍스트 몇 글자는 상대방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으로 충분치 않은 것이다. 카카오톡이란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문제인 셈이다.

형식에 매몰되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게 돼 문제다. 이별을 왜 결심하게 됐는지와 이별을 카카오톡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정 같은 건 상관없게 돼버린다. 그저 카카오톡으로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개념 없는 사람이 돼버리는 것이다. 형식에 내용이 가려지면 차별로 나타나기도 한다. 차별은 특정 행동을 하거나 특정 조건을 갖췄다는 이유로 특정인을 배제하거나 특혜를 주는 직접차별만 있는 게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공정하게 바라본다 하더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집단을 고려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그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 또한 있다. 예컨대 채용시 일정정도 이상의 시력을 요구하거나 특정 성별이나 나이를 제시하는 건 장애인, 여성, 노인이 가진 구체적인 상황이나 맥락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 차별하는 것이다.

형식이 아닌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 다나카 마키코는 국민에게 인기가 좋았다. 자신의 방식으로 솔직하고도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덕분이었다. 그러나 시원한 촌철살인의 언변 뒤에는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이념이나 정책이 결여되어 있었다. 일각에서 ‘정치만담가’라고 칭한 이유다. 정치가에게 필요한 확고한 이념이나 정책, 지도력, 설득력 등이 모자란 그녀는 결국 1년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아미티지 면담 요구를 거절했듯, 다른 정책적 사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한 탓이다. 카카오톡으로 이별한다해서 상대방이 말하는 이별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다시 이별을 받게 되거나, 이별을 고할 수 있다. 카카오톡과 이별의 관계와 함께 형식과 내용의 관계도 생각해봐야 한다.

카카오톡으로 관계를 쉽게 맺고 쉽게 끊으려는 행위는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을 정도로 자신의 삶이 여유롭지 않다는 현실에서도 비롯된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이별 통보 방식으로 1위에 카카오톡이 오른 건 그 때문이다. 카카오톡은 이별을 약속잡아 에너지를 쏟을 필요없이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연인처럼 내밀한 관계에서조차 대화 실종을 가속화하는 사회 요인도 은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인과의 이별은 상대방과의 관계가 폭력, 방치, 착취 등으로 이뤄져 있지 않은 이상 누구에게나 슬프다. 전화, 대면, 문자 등 어떤 방식을 통하더라도 이별은 슬픈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다.